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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원자력의학원 병리과장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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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년 전의 일임에도 아주 또렷이 기억하는 일이 있다. 2013년 여름에 일본산 수산물에서의 방사성물질 검출로 인해 방사능 먹거리 공포가 온 나라를 강타했다. 그 해 12월 초 제주에서 열린 제주발전세미나에서 방사선인체영향에 관한 발표를 하게 되었다. 운 나쁘게 방사능물질에 오염된 수산물을 먹는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 인체에 줄 해가 얼마나 미미할지, 그러한 우려가 얼마나 기우에 불과한 지를 열심히 수치화하여 설명하였다, 나름 전달력이 높은 발표였다고 느껴 기분이 괜찮았다. 그러나 이어진 그 날의 토론이 내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여느 세미나처럼 생각했던 내 자신이 얼마나 비현실적이며 오만한 발상의 소유자인지 깊이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치 내 자신이 온실 속의 화초처럼 나약하게 느껴졌다. 그 세미나 참석자 중 다수가 제주수산협동조합 사람들 혹은 실제 제주에서 수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이었다. 원자력 혹은 방사선 관계자들과 기자, 정부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세미나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인 것을 내가 감히 다룬 셈이었다. 좌중에서 많은 질문과 질타가 쏟아져 나왔다. “내용을 듣고 보니 정말 염려할 일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내용을 왜 제대로 국민들에게 전달하지 않고 이제 와서 우리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이냐“가 내가 지금 가장 강하게 기억하고 있는 말이다. 제주 수세(收稅)의 삼분의 일이 수산업으로부터 온다고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제주특별자치도는 부도나게 생겼다”고 말하는 제주도 공무원의 비감한 얼굴과 “이번 설에도 냉동 갈치가 선물로 팔리지 않는다면 우리 조합 문 닫아요” 하던 수산조합 간부 어르신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나름 기사도 쓰고 토론회든 문의 전화든 열심히 대응했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억울함이 없지 않았으나, 그분들과 마주하여 나는 역부족이라 죄송하다는 말 밖에 달리 반응할 것이 없었다. 그날 그들의 반응은 분노 그 자체였다. 최근 광화문 촛불시위에서 마이크 잡고 논리정연하게 분노를 표출하던 어느 여고생의 그것과 흡사하다. 윈코리아의 대중소통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이십 년 넘게 일해 온 한국원자력의학원은 국가적 차원에서의 방사선의학연구의 임무를 부여받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방사선의학연구소, 원자력병원,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이하 방비센터)의 3대 축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조직의 이름이 말해주듯이 방사선의 의학적 이용에 관한 연구, 방사선의 주 타겟인 암 전문병원, 방사선/원자력사고나 방사능테러 시의 의료대응을 책임지는 역할들이다. 나는 원자력병원 병리과 의사로 시작하여 연구와 방사선비상진료센터의 기능을 겸직하게 되었다. 특히 방사선피폭환자 치료기술 연구의 경험을 통해 지난 5년 반 동안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장을 맡게 되었다. 조용하던 방비센터가 하필이면 내가 센터장을 맡은 지 채 일 년도 되지 않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맞이하였다. 방비센터 능력개발 특별 프로그램이라도 되는 듯,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센터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많은 기억과 교훈의 시간들이었고, 방비직원 모두의 단결된 분투의 시간들은 방비센터를 세계 탑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과거에 정신과라고 하면 심한 정신이상자들만 방문하는 곳으로 알았으나, 지금의 정신건강의학과는 스트레스에 지친 바로 나도 너도 방문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인식과 기능의 변화를 이루었다. 방비센터가 후쿠시마 사고를 겪은 후 알게 된 것 중 하나도 이러하다. 방사선피폭으로 사경을 헤맬 사람들을 어떻게 치료해 내느냐에 집중하였다가, 후쿠시마사고 이후 응급처치를 요하지는 않으나 불안과 공포에서 오는 문제 해결을 위한 서포트. ‘당신은 괜찮습니다’라고 말해줄 정밀검사의 능력과 그들을 서포트하고자 하는 의료진의 태도가 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원자력사고 의료의 입장에서 보면 체르노빌 형 의료대응으로부터, 후쿠시마형 의료대응으로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체르노빌 사고가 실제 많은 의료적 문제를 남겼다고 한다면, 후쿠시마사고는 대중에 대한 정보전달이 더욱 중요한 화두임을 일깨워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후쿠시마사고 때문에 방사선피폭으로 사망한 사람은 없다. 피난 과정에서 노약자들이 낙상사고, 저체온증, 감염 등으로 사망하는 불행을 경험했다. 실제 우리센터에서도 방사선영향클리닉을 방문하여 내외부피폭 정밀검사와 상담을 받은 수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은 피폭되지 않았으니 안심하십시오~ 의 역할이 가장 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고 후 국민들이 의료진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시기적절하게 올바른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얼마나 사회와 사람들에게 중요한 일인지를 배운 귀한 시간들이었다.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여성의 위치가 많이 좋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minority임을 우리는 일터에서 일상에서 경험한다. Minority의 장점은 서로를 돕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윈코리아는 참으로 특이한 조직이다. 각기 자기 일터에서의 중한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협회의 일을 헌신적으로 하고들 계시다. 우리 윈코리아가 일거리를 하나 더 떠맡는 부담스런 친정이 아니라, 내 걱정거리를 함께 들어주고 격려해주는 포근하고 든든한 친정으로 받아들여지기를 소망해 본다. 나는 나이듦이 싫지 않다. 점점 두려움이 적어져서이다. 시대를 주도하는 젊음의 아이디어가 경험과 지혜의 늙음과 조화롭게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서의 우리협회가 되길 희망한다. 더 많은 젊음이 우리 협회에 수혈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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